HOMEFor TouristsFor ResidentsAbout Ikoma

이코마시의 역사

페이지 인쇄

에도 시대까지의 이코마시의 역사

이코마지방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코마 신사가 유라쿠 천황 때에 창건되었고, 조후쿠지 절이 쇼토쿠태자에 의해 창건된 것을 보면 옛시대부터 이미 문화의 꽃이 피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분시대부터 나라시대에 걸쳐서는 엔노오즈누 수행자, 교기 스님, 아리마 왕자, 미노노오카마로무라지 등이 역사에 발자취를 새기고 있으며, 헤구리 일족이 세력을 떨쳤습니다. 교기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는 엔푸쿠지 절, 호도지 절, 호라쿠지 절, 이나쿠라지 절 등은 지금도 남아 있으며, 지쿠린지 절 경내에 교기 스님의 무덤이 있습니다. 헤이안 시대가 되면서 장원(莊園)경영이 활발해져 다카야마쇼, 이코마쇼, 쇼덴, 고묘, 나바타케, 하기하라 등의 마을이 새롭게 생겼습니다.
또한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서는 산악종교와 지장신앙이 활발하여 각지에 팔대용왕과 석불신앙이 성행하였습니다.
무로마치 시대 중기에 이코마의 북부를 지배하고 있었던 다카야마 일족이 다도의 도구로서 차선을 고안해 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져오는 「다카야마 차선」입니다.
오닌동란 이후, 농민이 무력으로 향토를 지키는 세력이 되어 영내 무사들과 함께 호족저택촌을 중심으로 일대세력을 형성하였으나, 전국시대 말기부터는 마쓰나가 히사히데, 쓰쓰이 준케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동생 히데나가가 지배하는 시대로 바뀌자, 세력을 누려왔던 농민들로부터 창과 칼을 몰수하고 전답의 수확량을 측정하는 등, 이들 농민세력을 또 다시 지배하면서 향촌을 근세의 농촌으로 변모시켜 나갔습니다. 헤구리 군에 17개촌, 소에시모 군에 5개촌이 형성된 것도 이러한 역사적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도쿠가와 시대 후기에 접어들어 봉건사회가 확립되어 영주는 안정되고 신분제도도 엄격해져 농민은 비싼 소작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어 되었습니다. 당시 이코마 지방은 고리야마 번과 영주직속 무사들의 영지가 어지럽게 분포되어 있었는데 게다가 오토다 지방에는 약간의 막부의 직할영지도 있어서 당시의 영주는 약1만섬 밖에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1678년에 단카이 스님에 의해 창건된 호잔지 절은 천황과 쇼군의 신앙이 두터웠고 또한 민중들의 참배도 활발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코마다니 17개 촌의 씨족신으로서의 이코마 신사도 크게 번영을 누렸습니다. 더욱이 겐로쿠 시대에 다이쓰 스님이 이곳에 정토종의 일파인 융통염불종을 널리 퍼뜨려 이 지역에 융통염불종 계통의 절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막부 말기의 혼란기는 평온했던 산마을에도 영향을 미쳐 다카야마지방의 홋타 일족의 영지에서는 가고 폭동, 이코마관청 관할의 마쓰다이라 영지에서는 야노소동이라는 농민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참고자료: 이코마시지·자료편〕

메이지 시대 이후의 이코마시 역사

메이지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행정조직의 혼란과 개혁이 계속되었고, 관할하는 부현(府県)만도 1887년까지 나라현, 나라부, 사카이현, 오사카부, 나라현과 또한 군(郡) 행정제도하의 자치제도, 대구역, 소구역, 읍면장제, 읍면행정제 등 신속하게 변화를 거듭하였습니다.
이와함께 문명개화의 물결은 이코마에도 영향을 미쳐 1889년의 읍면(町村)행정제 시행으로 이코마 지방 22개의 촌은 기타이코마촌, 미나미이코마촌, 기타야마토촌의 3개 촌으로 나뉘어졌으며 이들 3개 촌은 각각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897년에 군 행정제가 통폐합되어 헤구리, 소호시모의 양군이 통합되어, 새롭게 이코마군이 탄생되었습니다.
1914년에는 숙원이었던 이코마 터널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여 개통되었으며 오사카 나라 지방간에 오사카전기궤도 즉 현재의 긴테쓰전철이 개통되었습니다. 깊은 산촌에도 전기가 들어오고, 이코마 역에서 산 중턱의 호잔지 절까지의 참배길에는 요리집, 음식점, 여관, 토산품점 등의 업자들이 비좁는 듯이 처마를 잇대고 영업을 시작하였으며 문전마을로 번영을 누렸으며 또한 이마자토신치와 더불어 유곽으로서도 유명해 졌습니다.
전기와 전화가 들어오고 1918년에 일본 최초로 케이블카가 역과 호잔지 절간에 연결되는 등, 기타이코마 촌은 급속히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1922년에는 읍(町)의 행정기관이 설치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1925년에는 호잔지 절까지갈 수 있는 등산자동차도로가 개통되었으며, 1927년에는 미나미이코마를 경유해서 오지까지 시기이코마전철, 즉 오늘날의 긴테쓰전철 이코마선이 각각 개통되었습니다. 이코마야마 산 정상에 유원지를 개발하게 되면서 1929년에는 산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개통되었고, 1931년에는 숙원이었던 상수도가 완성되면서 비록 작지만 「근대적 마을」로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지방자치제의 형태도 점차 정비되었으나 그것도 일순에 지나지 않았으며 1941년에는 태평양 전쟁에 돌입하여 이코마시도 암흑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전쟁의 재화는 모면했지만 국민생활이 궁핍해지면서 참배인들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여 이코마의 마을은 다시 왕년의 활기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전화를 피해 도회지에서 지방으로 이주해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지방자치도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새로운 헌법에 의한 「주민들의 주민들에 의한, 주민들을 위한」 지방자치행정이 실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55년 3월10일에 미나미이코마촌과 1957년 3월31일에 기타야마토촌이 통합되었습니다.
더욱이 1959년 6월에는 한나도로, 1964년 7월에는 신이코마 터널이 개통되는 등, 오사카와의 거리가 한층 단축되면서 주택 붐을 타고 인구도 급증하기 시작하였으며 1971년 11월1일에는 나라현내에서 9번째로 시정(市制)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자료출처: 이코마시지·자료편〕

문의처: 기획 정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