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
이코마시의 전통산업
이코마시 북부 경계선에는 차선, 차도구, 뜨개질 바늘 등의 대나무 제품이 유명한 다카야마 지구가 있습니다.대나무의 문화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일본문화와 대나무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예를 들어 다케토리모노가타리 전설, 이 낭만이 가득한 이야기 속에 일본인이 얼마나 대나무를 사랑하여 생활속의 일부로 도입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서는 대나무가 천하의 뛰어난 소재라고 하였으며, 활과 화살, 깃대, 죽창, 피리, 국자, 젓가락, 발 등 폭넓은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후, 무술, 음악, 다도, 꽃꽂이 등이 성행하여 대나무의 수요가 늘어나서 일본문화의 발달에 공헌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나무의 곧은 성질을 이용한 제품에는 어딘지모르게 향기처럼 그윽한 품위를 느끼게 합니다.
「차도구나 다실의 건축, 그리고 도구를 통하여, 일본의 전통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대나무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8세기의 보물을 수장하고 있는 정창원 시대부터 대나무 제품은 일본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걸어 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후 무로마치 시대부터 다도가 성행하여 대나무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차도구에서 차칙(茶則), 차시(茶匙), 차선, 화기(花器), 향합(香盒), 물주전자, 엽차용기, 과자그릇 등 대나무를 이용한 공예품을 만들어 이용하는 범위는 상당히 넓습니다.
또한 다실의 주변을 살펴보면, 다실 뜰앞의 울타리, 손 씻는 물을 담아 놓은 죽제 물그릇, 창문, 천장 등 모든 곳에는 대나무가 소재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대나무가 가지고 있는 대나무 특유의 청조한 멋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기술을 견학할 수 있습니다.(다카야마 차선)
정성을 담아서 제작하는
곧게 뻗어 있으면서도,
잘 휘어지는 대나무의 성질을 이용하여 실같이 가늘고 섬세하게 쪼개어 제작하는 차선.
가늘게 쪼갠 뾰족한 끝이 하나 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듯 합니다.
대나무를 응시하는 장인의 눈빛이,
숙련된 기술을 터득한 손 끝에 모아지면 예술의 경지로 승화되어,
이를 사용하는 다도인 들의 마음속 깊이 전달됩니다.
재료를 용도와 장인들의 유파에 따라 60∼120개가 되는 실처럼 가는 댓살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쪼개어 집니다. 만일 실수하여 댓살을 하나라도 잘못 쪼개어 버리면 차선 자체가 상품화되지 못하는 문자 그대로 섬세한 「전통 수공예품」입니다.
차선이 완성되기까지(차선 제작)
| 1. 헤기(얇게 깎는 과정) | ![]() |
| 2. 고와리(작게 쪼개어 나기는 과정) | ![]() |
| 3. 아지케즈리(모양을 다듬어 나가는 과정) | ![]() |
| 4. 멘토리(모서리를 다져 나가는 과정) | ![]() |
| 5. 가미아미(차선의 모양을 아름답게 다듬어 나가는 과정) | ![]() |
| 6. 마무리 | ![]() |
전통을 지켜 나갑니다
이코마시의 북쪽 경계선에 위치한 다카야마초는 대나무제품의 전통 기법을 연면히 지켜오고 있는 마을입니다. 500년 역사를 가진 다카야마 차선을 비롯하여 차칙(茶則), 차시(茶匙), 화기(花器), 향합(香盒) 등의 차도구를 제작해 나가는 비법이 연면히 계승되어 왔으며 지금도 다카야마의 주민들에 의해 전통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대나무제품의 멋과 아름다움을 널리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하여 지역 전통산업의 진흥을 한층 도모하고자 마련되어진 것이 다카야마 죽림원입니다.
광대한 언덕을 배경으로 하여 연못과 정원수가 배치되어 있고 자료관, 다목적 광장, 대나무 생태원 등 대나무에 관한 박물관과 식물원을 겸한 갖가지 시설로 정비되어 있습니다.
자료관에는 다카야마초에서 생산되는 차선, 차도구, 그리고 대나무로 만든 뜨개질 바늘 등의 제품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비디오를 통하여 차선을 만드는 작업 과정도 시청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료관에는 일본식 방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흰 모래가 깔려있는 일본식 정원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 오른쪽에는 차를 마시기 위해 다실에 들어가기 전에 대기하는 곳과 손 씻는 물을 담아 놓은 대나무로 만든 물그릇, 그리고 다실 앞의 정원 등이 아름답고 정갈하게 꾸며져있는 본격적인 다실 지쿠부암자가 있습니다.
자료관의 서쪽에 펼쳐지는 정원에는 일본과 세계에서 수집한 각종 대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인 참대와 담죽 등에서부터, 진귀한 마디를 가지고 있는 귀갑죽이나 검을 색을 띤 오죽, 줄기가 들어있는 스호대나무 등의 생태를 꼼꼼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엔라쿠 오라쿠차
엔라쿠 오라쿠차는 큰 차도구(밥공기, 차선 등)를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제공해 드리고 있으며 동시에 자리를 같이 한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고 더욱 많은 보급을 위해 죽림원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차를 마시는 모임입니다.[특징]
차선의 생산지답게 항상 맑은 청죽을 사용하여 차를 달입니다.동그랗게 둘러 앉아 서로가 얼굴을 마주 하면서 차를 마시는 등, 전통 예절에 신경을 쓰지않고 차를 즐길 수 있습니다.
도구는 기술적, 재료적, 분위기적으로 최대한의 크키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밥공기의 지름은 39cm, 차선의 길이 40cm
이코마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 및 일화 소개
금빛 소리개 발상지 전설
나라 시대 이전에 이와레히코(후일의 진무 천황)는 국가의 중심을 나라지방인 야마토에 정하려고 생각하여 구주지방의 히무카(日向)의 땅에서 길을 떠났습니다. 그 당시, 나라지방인 이코마 지방에는 나가스네히코라는 호족이 세력을 떨치고 있어 이코마야마 산과 가미마치 일대에서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싸움에서 이와레히코의 활에 금빛 소리개가 내려앉아 나가스네히코의 무리는 그 눈부신 햇살 때문에 앞을 바라 볼 수 없어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이 역사이야기가 이 곳에 전해 내려오는 금빛 소리개 발상지 전설입니다.‘오노마유미 다케유미’에 관한 전설
나라 시대에 지금의 가미마치와 도미오 부근에 괴이한 새가 날아와 작물에 피해를 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곳에 살고 있었던 아버지 ‘오노마유미 다케유미’와 아들 ‘나가마로’부자는 쇼무 천황의 사냥행차에 동행하였습니다. 때마침 그 괴이한 새는 갑자기 숲속에서 파다닥거리며 하늘높이 날아 가는 것을 보고 ‘나가마로’는 황급히 화살을 빼어 새를 향해 쏘았는데 불행히도 그 화살이 빗나가 아버지 ‘다케유미’에게 명중하여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쇼무 천황은 이를 불쌍히 여겨 비명에 숨진 ‘다케유미’를 공양하기 위하여, 교기 스님에게 절을 창건케하여 조큐지 절이라는 이름을 명명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새벽을 잘못 알린 닭 전설
옛날, 진구 황후가 원정길에 오르는 도중 이코마에 들렀습니다. 다음날 새벽 빨리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닭에게 때를 정확히 알려 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닭은 실수하여 너무 일찍 울어버려 황후와 병사들이 황급히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날이 새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황후는 그 때서야 닭이 너무 일찍 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황후는 화가 치밀어 그 닭을 이코마가와의 강물속에 던져 버렸습니다. 때마침 강하류에서는 다쓰타 신이 강물에 떠내려 오는 닭을 보고 불쌍히 여겨 데려다 키웠다고 합니다.그 후부터는 이코마 지방에서는 닭은 쓸모 없는 가축이라고 하여 사육도 하지 않고 그냥 잡아 먹기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쓰타 지방에서는 다쓰타 신이 닭을 구원해 주었기 때문에 이를 소중히 잘 길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닭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엔노교자 스님이 도깨비를 물리친 전설
옛날, 오니토리 산 속에 부부도깨비와 아기도깨비가 살고 있었는데 사람의 아기를 유괴하거나 음식을 빼았아 먹는 등, 나쁜 짓만 일삼고 있었습니다. 이에 고통을 받고 있었던 마을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공작명왕이라는 부처님의 계시를 받고, 엔노교자 스님이 이코마야마 산으로 들어가 한 마리의 아기도깨비를 붙잡아서 몰래 숨겨버렸습니다. 갑자기 행방불명이 된 아기도깨비를 찾아 여기 저기를 헤매고 있었던 부부도깨비를 붙잡아 스님은, 「도깨비도 자신의 아이를 귀여워 하거늘 어찌하여 인간이 자기 아이를 귀여워 하지 않겠느뇨. 이제부터는 절대로 그런 나쁜 짓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그 후부터 도깨비는 그때까지의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쳐 참회하였기 때문에 스님은 이들 도깨비의 머리를 깍아 스님의 제자로 삼았습니다.이같이 스님이 도깨비를 붙잡아 제자로 삼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이곳을 ‘오니도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